마음편지

일상에 숨어있는 작은 깨달음과 마음 이야기

마음의 사회학 ⑭ - 아우르는 공부

P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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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唯心)과 유물(唯物)의 논쟁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마음을 닦는 공부인이니 유심론 편에 서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한쪽 편을 들자고 정신과 물질의 ‘우선성(priority)’을 따지는 건 좀 소모적입니다.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교의품 31).’는 법문 속에선 둘 사이의 적대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물질은 다양한 층위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최상위 층위인 ‘과학문명’도 있지만, 현실에서 주로 접하는 층위는 영에 대비되는 ‘육신’, 내적 가치에 대비되는 ‘금전’ 정도가 될 겁니다.


대종사께서는 고행수도하신 탓에 곳곳에 새겨진 병근이 기혈이 쇠함에 따라 나타나 육신을 괴롭혔다 토로하셨고, 정산종사께서도 고생 가운데 으뜸은 병고라 하셨으니 건강한 몸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소성대(以小成大)로 근거 있고 믿음 있는 곳에 자본을 심어 무용한 낭비를 단단히 방지하면 살림이 불어나고 마음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인도품 41)이라는 가정경제에 대한 가르침은 경제적 여건이 마음공부와 동떨어진 요소가 아님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공부인이자 생활인입니다. 사업가라고 해서 정신 영역에 소홀해선 안 되듯, 고상한 일에 종사한다고 물질 영역에 무심한 것도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세월보다 적은 나이가 되니, 일에 열중하다 건강을 잃은 동료들, 신념을 지키느라 간고하게 살아온 유지지사들을 간간이 마주하게 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며 차 한잔, 곡주 한잔으로 마음을 연하지만 솟아나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중도(中道)’라는 말은 어른스럽습니다. ‘원만(圓滿)’이란 말도 편안합니다. 너른 도량에서 나오는 심법에는 편착이 없습니다. 정신은 추구할 가치이고, 물질은 활용할 대상입니다. 각자 그대로 의미와 필요가 있는 삶의 다른 면모이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