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P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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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법회, 학생 법회를 다니던 시절

  초창기 교당이라 버젓한 공간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시장바닥 상가나 낡은 점집 같은 곳을 전전하며 법회를 보았지요.


  교무님은 어떻게든 자금을 모으려 간고한 생활을 했습니다.

  교무님이 간장 하나 놓고 식사하신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어려운 교도 가정에 쌀 한 포대, 연탄 한 장이라도 베풀려 애쓰셨습니다.

  

  교무님은 때때로 제게 고기를 사 주셨습니다.

  그땐 내가 어린이회장, 학생회장을 해 이뻐서 그러시나 했습니다.

  한편으론 교당 형편을 알기에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교무님께서 초라한 밥상에 지쳐 고기를 드시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혼자 드실 순 없으니 밥동무가 필요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어른이 되어 교무님께 선물을 해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고급 녹차를 드릴까, 실용적으로 내복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당시 유행하던 화장품을 선택했습니다.


  당신께 안 어울리는 선물이라고 싫어하실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매우 기뻐하시며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교무님께도 화장품은 피부 보호를 위한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역자에게 완성된 인격, 완벽한 성직자의 생활을 기대합니다.

  존경의 대가인 것처럼 가혹한 요구와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니... 이들도 그저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었습니다.


  언제나 내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가족 같은 이웃

  신심이 사그라들고 수행에 꾀가 날 때, 마음을 북돋아 주는 신실한 법동지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살 만한 것 같습니다.



  그대들이 남이 아니요, 여러 생의 다정한 형제간이니라. 그대들은 서로 사랑하기를 금같이 하고, 서로 위하기를 옥같이 하라.- <정산종사법어>, 유촉편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