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DO

아내의 발목 골절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첫 수술 타임이라 여러 팀이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 눈길을 끈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 두려운 눈빛으로 떨고 있는 5살가량의 여자 어린이였습니다. 아이는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온몸이 불에 그을렸고, 한쪽 손목은 아예 잘려있었습니다.
뒤에서 휠체어를 붙들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은 말 그대로 혼이 나간 모습이었습니다. 어지간해야 상태도 묻고 위로도 할 텐데, 아이와 엄마를 본 모든 이들은 말문이 막혀 그저 숙연하게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 생각에 온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진리가 있는가? 인과가 있는가? 저 어린아이의 시련에 이유가 있을까? 그냥 불운이 찾아와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했습니다.
세상엔 과보를 운운하기 어려운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질병, 사고, 기아, 학대, 전쟁 등으로 생사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우연으로 돌린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세상사를 우연 혹은 운명으로 돌리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21세기 한국사회가 여전히 주술과 무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왜?’라는 질문 속에서 치열하게 답을 찾기보다 무언가에 기대어 편안하게 답을 찾으려는 영적 게으름 때문일 겁니다.
대종사께서는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정업(定業)을 상쇄(相殺)하지는 못한다.’ 하셨습니다. 당신조차도 교화 과정에서 생긴 완강한 중생들의 사기(邪氣) 악기(惡氣)를 그대로 받는 지경이었으니, 인과를 모른 채 악업을 쌓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얼마나 슬프고 안타깝게 보셨을까요.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운명에 끌리어 화복의 지배를 받는 범부중생의 길을 갈 것인가, 운명을 초월하여 화복을 자유로이 수용하는 불보살의 길을 갈 것인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한 그 아이가 많은 이들의 기도로 하루빨리 천업을 돌파하고 불보살의 길에서 안식을 찾길 기원합니다.
PADO
아내의 발목 골절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첫 수술 타임이라 여러 팀이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 눈길을 끈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 두려운 눈빛으로 떨고 있는 5살가량의 여자 어린이였습니다. 아이는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온몸이 불에 그을렸고, 한쪽 손목은 아예 잘려있었습니다.
뒤에서 휠체어를 붙들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은 말 그대로 혼이 나간 모습이었습니다. 어지간해야 상태도 묻고 위로도 할 텐데, 아이와 엄마를 본 모든 이들은 말문이 막혀 그저 숙연하게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 생각에 온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진리가 있는가? 인과가 있는가? 저 어린아이의 시련에 이유가 있을까? 그냥 불운이 찾아와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했습니다.
세상엔 과보를 운운하기 어려운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질병, 사고, 기아, 학대, 전쟁 등으로 생사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우연으로 돌린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세상사를 우연 혹은 운명으로 돌리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21세기 한국사회가 여전히 주술과 무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왜?’라는 질문 속에서 치열하게 답을 찾기보다 무언가에 기대어 편안하게 답을 찾으려는 영적 게으름 때문일 겁니다.
대종사께서는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정업(定業)을 상쇄(相殺)하지는 못한다.’ 하셨습니다. 당신조차도 교화 과정에서 생긴 완강한 중생들의 사기(邪氣) 악기(惡氣)를 그대로 받는 지경이었으니, 인과를 모른 채 악업을 쌓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얼마나 슬프고 안타깝게 보셨을까요.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운명에 끌리어 화복의 지배를 받는 범부중생의 길을 갈 것인가, 운명을 초월하여 화복을 자유로이 수용하는 불보살의 길을 갈 것인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한 그 아이가 많은 이들의 기도로 하루빨리 천업을 돌파하고 불보살의 길에서 안식을 찾길 기원합니다.